연구활동>연구논단


 


5. 매너리즘에 빠진 지역축제 구하기
이 홍 재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ㅁ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종합연출

지역축제는 지역의 모든 자원을 결합한 표현이다. 그 표현 결과는 지역의 모든 것을 미리 느끼게 한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지역축제들은 지역 농산물 판매와 지역이미지에 쌍끌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나비나 반딧불이 만을 자랑하는 축제라면 돈이 아깝다. 그러나 그 작은 생물이 지역에 남겨주는 선물은 두고두고 커진다. 그런 점에서 하늘에 떠 있는 별, 물속에 잠겨있는 다슬기, 산속을 날아다니는 새, 저녁놀을 물들이는 낙조, 그저 가만히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있는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축제이벤트 소재가 된다.
문화축제는 지역의 문화이외에 더 큰 뜻을 담아야 한다. 역사를 말하고, 인물을 말하고, 지역의 미래를 말할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한다. 관광축제에 대하여 거는 기대는 당장의 수익보다도 미래 지향적인 잠재고객의 유인에 있다. 그러므로 지역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어야 한다.

이런 점들은 지역에서 더 잘 안다. 그래서 지역축제의 시작은 담대하다. 그런데 시간이 변하면서 성공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를 지역축제의 지체현상이라고 한다. 왜 지체인가. 환경의 변화, 관심사의 변화, 타 경쟁축제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제경쟁시대에 매너리즘에 빠진 축제들을 욕만 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지역축제에 애정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시작하던 때와 같은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한다. 요즘 흔히 각종 이벤트 회사들이 나름대로 기발한 이벤트를 개발하고, 자치단체들이 현혹되어 '성공사례 베껴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 와중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연륜 있는 축제들은 소외당하고 있다.


--------------------------------------------------------------------------------

ㅁ 매너리즘의 원인

지역축제들의 연륜이 오래된 축제일수록 '지역주민통합형 축제'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의 모든 것을 골고루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축제의 맛이 밋밋하다. 이것이 축제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단초가 된다.
지역의 축제추진위원회가 존재하는 연륜 있는 축제는 그 구성원들의 권위주의 때문에 매너리즘의 늪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들의 권위가 한때는 지역 축제의 명맥을 이어왔을지 몰라도 오늘날은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된 것이다. 젊은 층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낯설게 비치고, 새로운 위원의 진입은 그 동안의 노고를 짓밟는 것으로 보이며, 비판이나 대안은 불손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새로운 협찬이나 단체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일단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기존의 프로그램을 대체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들어와 하는 것은 좋은데 기존의 것을 뺄 수는 없기에 각종 프로그램은 잡탕밥이 된다. 또 추진위원들이 임기 중에 프로그램이 빠지는 것은 무능의 표식으로 보일까봐 그냥 놓아둔다.

연세가 드신 추진위원장은 지역에서 덕망 있고 점잖은 분이기 때문에 지역 상공인들에게 머리숙여 축제 예산을 구하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정성스럽게 하면 되지 뭘...". 재정의 한계가 곧 매너리즘의 지름길이다.
더 큰 적은 내부에 있다. "우리 축제는 연륜이 있기 때문에 외지인들이 너무너무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 이 수렁으로부터의 탈출은 축제가 호된 비판을 받기 전에는 깨어날 수 없는 헛된꿈이다. 내부평가는 물론 외부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이 수십년을 이어간다. 축제 전후에 있는 비판들은 찻잔 속의 파도에 불과하다.


--------------------------------------------------------------------------------

ㅁ 매너리즘으로부터의 탈피

첫째는 주제의식을 세워야 한다. 매너리즘에서 헤매는 축제는 대부분 주제의식이 희박하다. 그래서 함께 헤매는 것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목적이 분명하고, 지향하는 바가 확실하면 그 방법은 정당성을 얻는다. 축제의 주제의식은 명목상으로는 모두 대단하다. 그러나 실질적인 주제의식은 빈약하다. '지역문화의 창달'이라는 명목가치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실질가치를 추구하는 축제로 변환시켜야 관심을 끈다. 그래야 독창적인 아이템이 빛을 본다. 추진위원회도 명목목표보다 실질목표를 갖고 일해야 한다.

둘째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열려있는 축제기획, 개방적인 인사의 참여, 위아래로의 원활한 의견흐름이 이루어지는 추진위원회는 결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면 축제가 활발해지고 많은 동조를 얻게된다.

셋째는 실험정신을 도입해야 한다. 실험 없이 검증될 수 없고, 검증 없이 진실이 될 수 없다. 지역축제가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실험정신을 피한다면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조금씩 새로운 내용을 가미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서 나아가는 실험정신은 축제를 늘 깨어있게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실험의 의무'와 실험에서의 '실패에 대한 면책특권'을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예술정신이고 실험정신이다.

넷째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외부 전문가로부터의 평가는 필수적이다. 우리의 풍토는 기획이나 평가를 소홀히 한다. 그저 행사란 관행에서 의해 잘 집행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순응정신" 때문이다. 이 풍토는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민족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창조적 진화를 요구하는 변혁기에는 암적 존재이다. 연륜이 오래된 축제일수록 평가를 받아,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평가는 내부평가와 외부평가가 있다. 내부평가는 균형감각을 갖기 어렵다. 아전인수나 자가당착으로 헤매거나 인정에 쓸려서 제대로 하기 어렵다. 외부평가에 드는 작은 비용을 아끼려다가 축제를 매너리즘의 수렁에서 건지지 못하는 수가 있다. 외부 전문가의 이름으로 새판을 짜기에는 이 방법이 적합하다. 외부인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비난이 있다. 그래서 비교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눈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다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홍보나 강화하고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프로그램에 눈을 돌려보는 정도로는 또 다시 매너리즘의 늪에 빠진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항상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년 새로운 목표를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

ㅁ 개구리같은 축제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당장 뛰쳐나온다. 그러나 차가운 물이 담긴 비이커에 넣어 난로 위에 놓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그 개구리는 뭉그작거리다가 결국은 익어버린다. 지역축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자만은 체감할 수 없는 매너리즘을 불러온다. 예산도 없는데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패배의식은 그대로 매너리즘의 수렁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이 정도의 온도에서야 괜찮겠지 하는 개구리가 되지 말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축제를 구할 생각을 먼저하자. 그리고 목표를 세우고 방법을 찾자. 전통과 연륜과 경험이 아깝지 않은가. 어려운 때도 잘 해냈는데, 여건이 좋아진 지금 뒤지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동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저져버리는 죄악이다. 깨어있어야 한다. 지역의 축제들은 축제 책임자들은 참으로 신명나는 축제로 환골탈태시키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축제기획자들은 잘 나가는 축제에 붙어서 한 건 하려고만 하지 말고, 매너리즘에 빠진 축제를 구해주는데도 지대한 관심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