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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큰 그림 그리자
─ 이각규의 《21세기 지역이벤트 전략》을 읽고

이흥재(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실장)

● 마법의 손, 지역 이벤트
지역 이벤트는 지역활성화를 위한 종합연출이다. 최근 어려운 지역경제 여건에서도 지역들은 이러한 기대 속에서 여전히 각종 이벤트를 연다. 예를 들어 지역문화를 전승하고, 지역주민들의 통합력을 키워주고,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 키우는 데는 문화를 소재로 하는 이벤트 방법이 제격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소재가 무엇이든 단기간에 지역 이벤트로 지역을 종합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효과까지 적지 않게 생기니 말이다.
이래저래 이벤트는 지역을 활성화하는 마법의 손처럼 여겨져 지금 전국은 각종 이벤트로 달아올라 있다. 일단 소재를 개발하고 선점하려는 속내가 자치단체마다 깔려 있다. 지역이 이미 갖고 있는 자원이든, 새로 만든 자원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규모의 대소, 내용 및 소재의 유사성, 시기의 선택, 정치성과 경제성 치중, 파급효과 대비 투입비용의 과다여부 등으로 벌써부터 매스컴의 비아냥거리로 오르내리는 곳이 적지 않다. 그래도 이 물결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한 때 ‘이벤트가 일본을 변화시킨다’며 열도 전체를 이벤트 천국으로 만드려고 애쓴 적이 있다. 이벤트로 지역을 활성화해 지역경제와 민간경제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려던 80년대 일본 통산성의 이러한 노력은 한 동안 성공을 거두었다. 지역활성화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들은 ‘지역창조’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이벤트 기획사들이 다투어 생겨나고, 이들에 대한 연수와 교육까지 유행하며, 백서는 물론 각종 사례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단체들(예:지역활성화 센터, 인터크로스 등)이 있을 정도다.
지금 우리의 지역 이벤트가 갖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소재 개발이다. 기획력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관주도적 이벤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선뜻 민간에 내주지 못 하는 것도 관료적 속성과 함께 민간의 역량에 대한 불신 때문임을 간과할 수 없다. 기획사들이 적정 기획료를 받지 못 하는 것도 이 연속선상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 쯔쿠바엑스포 박람회장 전경.

기획사들에게도 나름대로 속사정은 있다. 지방의 이벤트에 중앙 기획사들이 대거 참여해 지방 기획사들이 발 들여놓을 틈을 주지 않거나, 지방의 문화권력들이 담합해 서울의 기획사들을 배제하는 세력화 움직임들이 문제점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는 모두 다 작은 이벤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제살 깎기 생존전략 싸움이다.

척박한 이벤트 환경의 참고서 역할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이벤트 열기에도 불구하고 이벤트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이 즈음에 이벤트 만들기에 참고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부터가 《21세기 지역 이벤트 전략》(커뮤니케이션북스, 2000)으로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자치단체의 이벤트 담당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의 필자는 오랫동안 지역이벤트 현장을 누비며 진두지휘했고, 실제로 몇 가지 축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바 있어 본서에 대한 신뢰감이 더 크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3부로 나뉜다.


′86 풍요의 나라 테크노피아 오프닝 세레모니(왼쪽)와 가고시마

제1부는 지역 이벤트의 동향, 이벤트 전략, 목적별 이벤트의 추진, 이벤트의 문제점과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론적 접근을 통해 이벤트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 것이다. 특히 지역진흥을 위한 이벤트의 역할에 대한 설명과 추진단계별 체크리스트를 제시함으로써 이벤트의 목적과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

오하라 축제에 참여한 무용단.

제2부에서는 이벤트를 종류별로 나누어 축제 이벤트, 박람회 및 전시 이벤트, 컨벤션 이벤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이벤트를 특성별로 차별화해 실무적인 차원에서 기획, 운영, 종료까지 참조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두드러진다.
제3부는 일본의 이벤트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지역활성화 이벤트, 국제 박람회, 지방 박람회, 지역축제, 특별 이벤트로 나누어 풍부한 사례를 들고 있다. 이 중에는 우리 나라의 성공적인 사례도 몇 개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부록으로 일본정부의 부처별 이벤트관련 정책을 소개해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정 구간을 왕복 혹은 순회하는 이벤트 열차가 있다. 네덜란드 왕
비까지 참석한 ‘네덜란드 특급열차’ 오프닝(위).

고배 포토피아 박람회 개막식.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행간을 뒤집어 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컨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관간의 협조방안은 무엇인가, 조직은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행정 주도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집객을 위한 홍보는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가, 이벤트 주고객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행사 종료 후에 어떠한 사항을 정리할 것인가까지…….
이 책은 예상문항에 대한 모범답안을 작성하듯이 약 60여개에 걸친 항목을 정리하고 있어 사전에 예상문제를 검토하기에 적합한 텍스트적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이벤트 입문자, 프로듀서, 운영자, 감독자,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곁에 두고 필요할 때 참고하기에 좋아 보인다. 설명방식도 평이해 마치 이벤트 준비 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쪼르르 쫓아오는 사람에게 알려주듯이 기술하고 있다.

현장경험·국내 사례 적어 아쉬워
이 책에는 필자의 이벤트 프로듀스 경험이 곳곳에서 배어 나오는데 이 또한 세세한 부문까지 다다르고 있다. 금산 인삼축제, 이천 도자기축제, 강화 고인돌축제 등은 필자가 기획한 역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필자가 기획안을 개발해 부지런히 뛰는 과정에서 흘린 땀이 배인 현장기록서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만큼 현장감이 있고 생동감이 서려 있다. 기획서를 상세히 소개한 것은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아도 될 것 같아 오히려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책에 나타난 흠을 꼬집자면 우선 책의 저술방식이 지나치게 문제 해결적 접근으로 일관했다는 점. 전략적 접근에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 도움받을 점이 적어 아쉽다. 물론 저자의 의도가 ‘전략’에 초점을 두었음은 표제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이벤트가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주어야 한다면 너무 소극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부여해야 하는 유기체와 같은 이벤트의 속성을 간과한 것으로 보아 읽는 사람들은 이 점을 추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화 고인돌축제(위)


금산 인삼축제

이 책에서는 30여개에 이르는 일본의 지역 이벤트를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유사 지역 이벤트 관계자들이 참조할 수도 있게 만든 것이 돋보인다. 각종 이벤트 관련 서적들이 한결같이 용어부터 소재개발까지 일본 서적들에 의존하는 바가 많아 우려했으나, 읽어보면서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어 안심된다. 지역의 문화행사나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고민되는 컨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일본 사례들이 일단의 참고자료로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사례에 많이 의존했다는 냄새가 책 전체에서 풍기는데,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차라리 일본 사례를 소개하는 별도의 책을 마련하고, 본서는 철저히 저자의 현장경험과 국내 사례를 좀더 주관적인 시각으로 재단했더라면 전통한복이든 개량한복이든 한복으로 태어났을 텐데…….

이천 도자기축제중 국제전통도예전
또 한 가지. 이벤트 과정별로 실천전략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지 못 한 점이 아쉽다. 물론 각각 항목별 내용에서 각 단계별 준비사항과 절차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과정별로 참조할 수 있도록 서술하는 방식의 메뉴얼이 아쉽기 때문에 실제 집행자들에게는 좀 산만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상세히 소개해야 할 부분도 다른 항목과 같은 분량으로 멈춰버린 아쉬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지역 이벤트 실용서로서 오랜만에 보는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다. 지역의 연례행사인 문화행사나 대소 이벤트는 행사가 끝나는 순간부터 새로운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전문가적 입장에서 담당하는 일을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제 지역문화 이벤트는 외화내빈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이런 점에서 현장의 지역 이벤트 담당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여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