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이 넘치는 지역문화 이벤트 만들기

"1000여개 지역축제 중 900여개는 잡탕"

금산인삼축제(1997), 강화고인돌축제(1998), 이천도자기축제(1999), 장성홍길동축제(2001), 영암왕인문화축제(200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2002), 영암왕인문화축제(2003)….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이들 축제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 이각규(48) 소장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국내 1000여 개가 넘는 축제의 홍수 속에서 이각규 소장의 손을 거친 축제들은 대부분 관심을 얻었다.
90년대 중반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를 성공시켰던 그는 84년 부산산업대 응용미술과를 나온뒤 롯데전자 광고 디자인, 대홍기획 이벤트 분야에서 15년여를 일했다.
87년 일본 제일기획(DIK)에 3개월 과정의 세일즈 프로모션 연수를 다녀온 뒤, 88올림픽 문화축제 행사 중 '세계음식축제', 89 대전엑스포 홍보프로젝트, 빅토리코리아-90 월드컵출전 한국축구팀 응원싸인대회 등의 이벤트를 잇따라 기획했다.
95년 이천도자기축제를 성공시킨 뒤 그는 지역축제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양적으로 팽창하는 한국 축제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도 가슴 한 구석에 진하게 자리잡았다. 대부분 특성이 없는 백화점식 축제와 경쟁하듯이 따라하는 중복축제, 축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 단순한 이벤트성 축제 등에 대해서는 따끔한 비판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의 흐름이나 유행을 잘 살펴볼 것을 권고한다. 세계가 점차 광역화로 나아가고 있고, 축제도 소규모 단위 축제에서 광역화축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통된 고속철도도 지역축제의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미없으면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지역축제 활성화(가제)'와 '일본의 지역이벤트 성공사례(가제)'라는 두 권의 책을 준비 중인 이 소장으로부터 한국축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선택과 집중이 축제 성공의 비결"

- 많은 축제를 기획했는데, 실패한 축제는 없는 것 같다.

"(웃음) 운이 좋았다. 실제 광고 대행사 시절부터 실패는 거의 없었는데, 당시 시기적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많았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필립스코리아의 의뢰를 받아 현대무용과 제품홍보를 접목시켰는데,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광고에서 일했던 96년에도 제품 홍보장에서 바로 계약하는 '일괄 쇼핑(One Stop)' 시스템을 만들어 효과를 얻었다. 다양한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시기였다."

- 성공비결은.

"첫 번째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파트너십이다. 공무원들이 전문가의 요구를 잘 받아주고, 서로 대화가 잘 소통되면 축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과 전문가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하면 축제는 절대 잘 될 수 없다.

둘째는 실무자들의 추진의지다. 대부분의 지역축제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인 만큼 강한 열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가 소재다. 아무리 의지를 갖고 있어도 소재가 나쁘면 성공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축제들은 대부분 소재가 좋았다.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소재라고 생각한다. 지자체가 기획한 소재가 나쁘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라'며 조언을 해준다."

- 조언사례는.

"지난해 강원도 태백시에 대해 컨설팅 작업을 했다. 태백시는 봄 철쭉제, 여름 쿨시네마, 가을 태백제, 겨울 눈꽃축제 등 계절마다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예산만 많이 들 뿐 뚜렷하게 각인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존 축제를 통폐합하고,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축제를 제안했다."

- 기대에 못 미친 축제는.

"(한참 생각한 뒤) 강화 고인돌 축제다. 처음 기획한 역사문화축제인데, 테마를 '선사시대, 원시시대 체험'으로 잡았다. 어차피 고인돌은 유인요소였고, 와서 석기를 만들고, 토기를 제작하기도 하면서 그 시절을 체험하는 교육용 축제로 구상했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2회 때까지 꽤 성공했다. 그런데, 3회 때부터 고려, 조선이 포함되면서 축제가 방만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인대회까지 개최했다. 지역축제의 안 좋은 모습을 모두 모아놓은 집합장 같았다. 첫 기획자로서, 축제가 일그러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 모범축제는.

"소재의 참신성 면에서는 함평나비축제, 보령머드축제, 운영시스템에서는 안동국제탈춤축제를 들 수 있다. 안동국제탈춤축제의 경우 자원봉사자 수만 3만 명이 동원된 행사다. 지역민들이 주차관리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자원했다. 지역민들의 참여도가 높은 축제로 금산인삼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축제는 완성품이 없다. 항상 새로워야 한다"

- 우리나라 축제에 문제가 많다. 가령, 정치인들이 일일이 축사를 하는 것도 외국에는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 정치인들이 일일이 한 마디씩 하는 것 큰 문제다. 외국에서는 짤막하게 개회사 하고 나면 끝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백화점식이라는 점이다. 프로그램 수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축제들이 외국보다 많다. 태백 눈축제의 경우 이벤트 프로그램이 20여 가지가 넘는데,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삿포로 눈축제는 10여 가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메인행사라고 할 수 있는 태백 눈축제의 조각상은 최대 5m에 불과한데 비해 삿포로는 20m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가짓수만 많고 집중도가 떨어진다.

세 번째는 주최측의 시각이 협소하다. 이벤트와 지역축제는 엄연히 다른데, 이벤트로만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네 번째는 축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30대 젊은 기획자들이 많이 생겨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다. 그리고, 교육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대학은 많이 생겼지만, 가르칠 사람들이 없다. 체육학 전공한 사람이 축제를 가르치는 실정이다. 물론, 커리큘럼도 이론과 실제의 조화가 이뤄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도 없애야 한다. 축제는 일탈의 장을 맛보러 가는 것인데, 아직도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의례 같은 식순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 국경일이라면 모를까, 이런 부분은 축제의 맛을 떨어뜨린다."

- 지역축제의 중복도 대단히 심각한 것 같은데.

"그렇다. 각 지자체에서는 '우리가 왜 축제를 해야 하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꼭 해야 하는지, 안 하면 안 되는지 말이다.

태백산을 둘러싼 지자체의 경우 모두 철쭉제를 개최한다. 이건 낭비다. 이런 경우 도에서 나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경기도 도자기엑스포가 한 예가 될 수 있지만, 도자기라는 아이템을 공유하면서도 각 지자체간의 차이를 부각시켜야 한다. 도자기엑스포에서 그것이 부족했다고 본다. 세계적인 흐름이 광역화로 가는 걸 잘 봐야 한다."

- 최근 남양주야외공연축제처럼 민과 관의 소통문제가 큰 것 같다.

"민이 주도하면 무조건 좋고, 관이 주도하면 무조건 나쁘다는 2분법적인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과 관, 그리고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제3섹터' 방식이 바람직하다. 원주한지축제의 경우 민이 주도하고 있지만, 성공한 축제라고 볼 수 없다."

- 어떤 축제를 성공했다고 볼 수 있나.

"처음 축제를 기획한 의도가 행사에 얼마나 반영됐나, 축제 메시지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잘 전달됐나, 지역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나, 축제 전후로 지역민들의 의식이 얼마나 달려졌나, 지역문화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나 등 다섯 개로 구분해서 평가를 한다. 우리는 흔히 축제를 지역마케팅(City Marketing)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업에서 제품을 홍보하듯이, 축제는 지역을 홍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축제를 판단한다."

- 공무원 대상 특강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있나.

"전문가한테 맡기라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공무원들은 아마추어 아닌가. 그리고, 자기 지역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축제에 반영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게, 안주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한다. 축제도 유행이 있다. 아무리 성공한 축제라도 3-4년마다 바꾸어야 한다.

관광객들은 항상 새로운 걸 요구한다. 메인행사를 빼고는 시대적 감각에 맞게 모두 바꿔줘야 한다. 축제는 공연이 아니다. 공연은 완성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이지만, 축제는 완성품이 있을 수 없다."

"1000여개 축제 중 900개는 잡탕이다"

- 지역축제를 종류별로 구분한다면.

"글쎄…. 특산품, 자연풍경, 역사문화, 문화예술 등 네 개 장르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눈꽃축제, 단풍제, 진도영등제 등이 자연풍경을 소재로 했고, 수원화성축제, 영암왕인축제, 백제문화제 등은 역사문화, 춘천 마임축제, 춘천 인형극축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은 문화예술을 테마로 한 축제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할 수 없는 축제들이 대부분이다. 1000여 개 축제중에서 100여 개 정도만 뚜렷이 성격이 나눠지고, 나머지 900개는 대부분 잡탕이다."

- 행사에는 어느 정도 관여하나.

"초기에는 기획 및 제작 위주로 하다가 2002년부터 기획과 컨설팅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제작은 하지 않는다. 간혹 제작의뢰가 들어와서 하기도 하지만, 주업무는 아니다."

- 제작이 수익이 많이 남는 게 아닌가?

"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제작비가 가장 크지만, 제작에 참여하면 최대 1년까지 시간을 뺏겨야 된다. 그런데, 기획은 2-3달 정도면 마무리된다. 시간대별로 수익을 계산해보면 꼭 제작수익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아이디어를 뽑아온다. 팀별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 방식으로 의논을 하다가 현실적인 방식을 뽑아낸다. 그런데, 기획을 하기 전에 일단 한 달동안 지역에서 철저하게 현지답사를 한다. 그래야만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담은 축제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우리의 강점이다."

- 지역축제를 기획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대부분은 단일 이벤트 업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축제는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단일 이벤트와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축제를 기획할 수 있는 업체는 20개 가량일 것이다. 대부분은 지자체에서 축제를 기획하고, 단일 이벤트의 경우, 이벤트업체에 맡기는 식으로 일을 추진한다."

"고속철도가 지역축제를 흔들어놓을 것이다"

- 축제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고속철도가 지역축제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그 전에는 일단 지방에 내려가면 재미없더라도, 눌러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축제가 재미없으면 머무르지 않고 곧장 서울로 올라올 것이다. 더 이상 일단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머무르다 가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역축제간 구조조정이 될 수도 있고,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다.

지역에서도 고속철과 지역축제와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곳이 많고, 지금 고속철이 지나는 지자체, 대구나 광주 등에서 컨설팅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전라북도와 부산시의 지자체에서는 특정 시기에 하는 축제에서 벗어나 상설축제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 우리 축제 중 세계화 가능성이 있는 것은.

"경기도 이천도자기축제와 금산인삼축제를 꼽을 수 있다.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매력이 아주 많다.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소재다. 게다가 지역과의 연계성도 높다. 금산도 그렇다. 둘 다 입지조건이 양호하다. 최근의 웰빙바람과도 맞물려 조건이 좋다. 다만 금산에서 2006년 세계인삼엑스포를 준비 중인데, 엑스포를 하려면 지금의 지역축제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인삼 한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며, 웰빙 트랜드를 중심으로 놓으면 좋은 행사가 될 것이다."

- 개인적인 계획은.

"나는 지역축제 전문가보다는 엑스포 전문가를 지향한다. 얼마 전 경주문화엑스포추진위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온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조건이 성숙하지는 않아 포기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박람회에 아주 관심이 많고, 이에 대한 자료를 많이 모으고 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강원도 태백, 삼척 등과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축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또한 '가야유적'을 축제로 만드는 것도 구상중이다. 2001년부터 가야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얼마전 '현의 노래'라는 책을 읽고 난 뒤 큰 감흥을 받았다. 올해 여름휴가도 김해, 고성, 고령 등 옛 가야지방을 답사하는 것으로 대신할 셈이다.

그리고, 올해 두 권의 책을 낼 계획이다. 3년전 부터 준비한 책인데, 지역축제 활성화와 일본의 지역이벤트 성공사례를 담았다."

- 우리나라 축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축제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가 주도하는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가야 하고, '상설법인화'도 필요하다. 그래야 노하우가 축적되고, 데이터베이스도 구축이 된다. 1회성 행사가 아니라 장기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김대홍 기자 (bugulbugul@empal.com)